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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20일 목회자칼럼

  • 관리자

 

영적인 안목


   장기나 바둑을 두다보면 꼭 끼어들어 이래라 저래라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훈수를 두는 분들이지요. 그런데 얼핏 보면 장기나 바둑을 실제로 두는 사람들보다 옆에서 훈수를 드는 분들이 그 장기나 바둑이 진행되어지는 수를 더 잘 보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 이유는 부담 없이 양쪽의 두는 수를 높은 위치에서 동시에 볼 수 있기 때문에, 훈수를 드는 사람들이 장기나 바둑을 두는 수를 더 잘 보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어떤 사물을 보고 분별하는 식견을 안목(眼目)이라고 말합니다. 


    조선 정조 때의 학자이자 문장가인 유한준(兪漢雋, 1732-1811)이라는 분이 계십니다. 이 분이 쓰신 『석농화원발』(石農畵苑跋)에 보면, ‘지즉위진애 애즉위진간’(知則爲眞愛 愛則爲眞看)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은 “알면 진정으로 사랑하게 되고, 사랑하게 되면 진정으로 보게 된다”라는 의미입니다. 어디서 많이 들어 본 말일 것입니다. 이 말을 전 문화재청장이셨던 유홍준 교수가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에서 인용하여 유명한 말이 되었습니다.

    유한준은 『석농화원발』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습니다.

   “그림은 그것을 알아보는 사람, 아끼는 사람, 보는 사람, 소장하는 사람이 있다. 유명한 화가 고개지(顧愷之)의 그림을 부엌에 걸거나, 왕애(王涯)의 그림을 벽에다 꾸미는 사람은 오직 소장한 것일 뿐이니 반드시 능히 그 그림을 볼 자격이 없다. 본다 해도 어린애가 보는 것과 비슷해서, 입을 벌리고 웃지만 다시 붉고 푸른 빛깔 외에 다른 것은 분별하지 못하는 사람은 반드시 능히 그 그림을 아낄 수가 없다. 설령 아낀다 해도 오직 붓과 종이의 빛깔만 가지고 취하거나, 형상과 배치만 가지고 구하는 사람은 반드시 능히 그 그림을 알아 볼 수가 없다. 그림을 알아보는 사람은 외형이나 법도 같은 것은 잠시 접어두고, 먼저 오묘한 이치와 아득한 조화 속에서 마음으로 만난다. 그런 까닭에 그림 감상의 묘는 소장하거나 바라보거나 아끼는 세 부류의 껍데기에 있지 않고, 알아봄에 있는 것이다.”


   그림을 알아보는 눈을 갖지 못한 사람, 곧 그림을 볼 줄 아는 안목이 없는 사람에게는 아무리 귀한 그림이라고 해도 그것은 귀한 것이 되지 못하는 것이지요. 그러기에 예수님은 ‘진주를 돼지에게 던지지 말라’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한 스승이 제자에게 희한하게 생긴 돌을 하나 주면서 값을 알아보라고 했습니다. 제자는 먼저 야채가게에 갔습니다. “이 돌을 드리면 내게 무엇을 주겠소?”

가게 주인이 대답했습니다. “예쁜 돌이네요. 배추 두 포기를 주겠소.”

이번에는 정육점으로 들어가 값을 물었습니다.

“참 희한하게 생긴 수석이네요. 소고기 5근하고 바꿉시다.”

그 다음으로 보석상을 들렀습니다. 유심히 살펴본 보석상 주인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습니다.

“이거 보통 귀한 보석이 아니네요. 우리 집에 있는 것 다 팔아도 이것을 살 수 없어요.”

제자가 이 말을 듣고 스승에게 돌아와 자초지종을 보고했더니 스승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알겠느냐! 보는 눈이 있는 사람에게만 가치가 드러나게 되어 있지. 결국, 귀한 것은 그것을 알아보는 사람만이 향유할 수 있는 것이네.”


  이처럼 귀한 것을 소유하고 향유할 수 있게 하는 또 다른 차원의 안목이 우리에게는 열려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영적인 안목입니다. 바로 이 영적인 안목을 더욱 높여 나갈 때, 밭에 감추인 보화처럼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나라를 더욱 발견하고 소유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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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월20일 목회자칼럼
  • 2008-0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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