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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30일 목회자 칼럼

  • 관리자

 

합리화


중국의 춘추전국시대에 있었던 일입니다. 노(魯)나라의 복부제라고 하는 사람이 신부라고 하는 마을에 원님으로 있었습니다. 어느 해 가을에 제(齊)나라 군사가 이 마을에 쳐들어왔습니다. 마침 가을 추수하기 직전이라 들에는 곡식이 누렇게 익어 있었습니다.

“저 아까운 곡식을 전부 원수한테 뺏기게 되었구나. 그럴 바에는 차라리 적이 쳐들어오기 전에 내 것 남의 것 가릴 것 없이 아무나 가서 빨리 거둬 오는 게 좋겠다.”

마을 사람들이 술렁거렸습니다. 그러자 원님인 복부제는 “안 된다. 들에 불을 질러라”고 명령하였습니다. 결국 곡식은 마을 사람들도 거두지 못했고 제나라 병사들도 가져가지 못했습니다.

백성들은 복부제에게 불만을 토로했고, 마침내 복부제는 황제의 소환을 받았습니다.

“아까운 곡식인데 백성들로 하여금 누구든지 갖도록 하지 않고 왜 불을 지르게 했는가?”

황제가 물었습니다. 복부제는 대답했습니다.

“그것은 비록 곡식은 잃어도 더 중요한 것을 잃지 않기 위해서였습니다. 전쟁 때이건 평화 시절이건 간에 백성에게 남의 것 공짜로 가지는 버릇을 들여 놓으면 나중에 이것을 고치는 데는 10년으로도 어렵습니다. 곡식을 불 지른 것은 백성들에게 공짜로 갖는 버릇을 들이지 않기 위해서였습니다.” 황제는 복부제에게 상을 주었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아담은 인류 최초로 ‘핑계’를 늘어놓았으며, 그 뒤로 수많은 이들이 아담의 본을 따라, 자신의 그릇됨을 부정하고자 하는 경향을 가지고 있습니다. 어떤 일이 자기 뜻대로 되지 않았을 때, 무의식적으로 자기에게 편리하게 그럴듯한 이유를 붙이는 것입니다. “핑계 없는 무덤 없다”는  속담이 있듯이 이 핑계 저 핑계 대며 자신의 잘못을 묵인하려고 합니다. 이것은 명확히 잘못입니다. 이것을 우리는 일반적으로 ‘변명’이라고 가볍게 넘겨버리기도 합니다. 이것을 심리학에서는 ‘합리화’라고 정의내립니다.

프로이드의 정신분석 이론에 의하면, ‘합리화’는 자아가 합리적 방법으로 자신이 느끼는 불안감을 해결하지 못할 때 자신이 의식하지 못하는 가운데 비현실적인 방법으로 불안감을 제거하려고 하는 무의식적인 심리적 ‘방어기제’ 가운데 하나입니다. ‘합리화’는 정당하지 못한 자기 행동에 그럴듯한 이유를 붙여 그 행동을 정당화하여 불안 의식을 제거하려는 것입니다.

합리화에 익숙한 사람들은 본질적인 것은 무시하고 자기 방어의 목적으로 무엇인가 변명할 것을 만들어서 남에게 이야기하게 됩니다. 그러나 이것이 반복되다 보면 일종의 자기 암시적 행위가 되어 본질은 더 감추어지고 그릇된 신념화가 이루어져 버리는 것이지요.


어떤 청년이 자신에게 여자 친구가 없는 이유를 이렇게 늘어놓았습니다. “나는 남자답지 못하고 구변도 형편없고 돈도 없다. 게다가 셋방살이를 하는 처지라서 젊은 여성에게 인기가 없어요.” 이에 대해 주변 여성에게 물어보니 전혀 다른 말이 들려왔습니다.

“저 사람은 괴팍하고 인정머리가 없는데다가 차가운 눈으로 사람을 보기 때문에 가까이 하기 싫어요.”

그 청년은 자신의 결점을 인정하고 싶지 않기 때문에 다른 이유를 붙여 합리화시킨 것입니다. 이러한 합리화는 어떤 부정적이고 불리한 상황에서 탈피하는데 있어서 전혀 도움이 되지 못합니다.

유명한 철학자 플라톤이 한번은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게서 심각한 오해를 받은 적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그를 비방하는데도 그는 자기의 처지를 변명하려 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한 제자가 플라톤에게 물어 보았습니다.

“선생님! 왜 변명을 안 하십니까?”

그 때 플라톤은 다음과 같이 답변했다고 합니다.

“그들의 비난을 종결시키는 것은 나의 변명이 아니다. 그들의 비난을 침묵시킬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나의 올바른 행위뿐이다.”

지금까지 자기 합리화에 익숙했다면 먼저 자신의 잘못된 합리화를 바로잡아 깨닫고, 그것을 솔직히 받아들이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그 이후에는 어떻게 생각하고 대처해야 할 것인가 개선점을 찾아서 나가야만 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도 변명을 늘어놓지 않고, 합리화하지 않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합리화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우리에게는 맞지 않는 행동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들이 합리화를 하게 되다보면 결국 창조주 하나님과 소중한 이들로부터 떨어져 나가 섬처럼 고립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잘못되고 연약한 부분을 감추지 않고 열어 두기를 원하신다는 것을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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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월30일 목회자 칼럼
  • 2008-0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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