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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6일 목회자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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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와 권력


최근에 “어메이징 그레이스(Amazing Grace)”라는 영화가 개봉되었습니다. 이 영화는 18세기 영국의 젊고 유능한 국회의원 윌리엄 월버포스(Willam Wilberforce)에 관한 영화입니다. 윌리엄 윌버포스는 1759년 영국 헐(Hull)의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케임브리지 세인트 존 칼리지를 졸업하고 정치에 입문해 21세 때 하원의원에 당선되었습니다. 그러던 중 윌버포스는 삶의 방향과 목적에 대해 반추하기 시작했습니다. 유럽 여행 중에 윌리엄 로우의 책 「경건하고 거룩한 삶을 위한 진지한 부르심」(A Serious Call to a Devout and Holy Life)을 읽고 자신의 진정한 목적과 부르심이 정치를 통해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는 영국의 사회적, 도덕적 혁신을 강하게 부르짖으며 가난하고 힘없는 자들을 섬기며 정치운동을 벌여 나갔습니다. 그 가운데 윌버포스를 유명하게 만든 것은 노예 무역과 노예 제도 폐지 운동이었습니다. 갖은 비난과 협박 가운데서 1788년 반노예제 운동을 시작하였습니다. 그리고 1806년 노예 무역이 완전히 폐지될 때까지 18년 동안 정치 운동을 벌여 나갔습니다. 1833년 그가 숨을 거두기 바로 며칠 전, 영국은 노예제 폐지라는 역사적인 신기원을 이루어 냈습니다. 영국에서의 노예제 폐지는 한 명의 정치인이 영국 역사상 가장 숭고한 사건의 중심에 서서 이루어낸 것입니다. 정치를 통해서 수많은 사건들 일어났고 일어나고 있지만 가운데 가장 숭고한 사건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정치를 통해 인간들은 많은 것들을 해결하고자 합니다. 그래서인지 일찍이 아리스토텔레스는 그의 저서 「정치학」에서 “인간은 본성적으로 정치적 동물이다”라고 정의 내렸는가 봅니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정치와 관련된 삶을 영위하고 있는 동물입니다.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작게는 가족, 크게는 국가라는 사회집단에 소속되었기에, 그 공동체의 이익을 위해 행동하는 정치적 성향을 가진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정치적 성향이 자신의 권력욕구와 결합되면 무서운 결과를 낳게 됩니다. 물론 권력을 추구하는 것은 일반적으로 인간이 가진 욕구입니다. 미국 제2대 대통령 존 애덤스는 “남자든 여자든, 젊은이든 늙은이든, 흑인이든 백인이든, 부자든 가난뱅이든, 상류층이든 하류층이든 모든 인간의 삶의 모든 단계, 즉 요람에서 무덤에 이르기까지 무엇보다 두드러지는 인간의 본성은 바로 우월함에 대한 열망이다”라고 했습니다. 타인에 대한 우월감과 타인을 지배하고자 하는 권력추구의 욕구가 없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권력욕구의 강렬함이 개인에 따라 다를 뿐입니다. 권력을 경험한 사람에게 있어서 권력은 세상에서 가장 달콤한 유혹이 될 정도의 세기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국회의원’이라는 단어가 우리나라에서는 그렇게 좋은 어감으로 다가오는 단어가 아님에도, 국회의원이 되고자 몇 년 아니 몇 십년을 끊임없이 달려드는 정치인들의 모습을 보면 일종의 중독의 증상을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정치의 목적은 권력을 행사하고자 함이 아니어야만 합니다. 미국의 제41대 대통령이었던 조지 부시는 “권력은 우리 자신의 목적 성취나 세상의 구경거리를 만들기 위해 또는 큰 이름을 떨치기 위해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권력은 사람들을 섬기는 단 한 가지 일을 위해서만 사용되도록 주어지는 것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정치의 목적에 대한 정의는 다양하게 내려질 수 있지만 궁극적으로 국민을 편안하게 잘 살아갈 수 있도록 섬기는 것입니다. 세종실록에 보면, 세종대왕은 “국민을 편안하게 하는 것이 정치의 근본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국민이 편안하도록 섬기는 것이 정치의 근본이다”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로서 최고의 권력을 가지고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은 마가복음 10장 45절에서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라고 선언했습니다. 비교할 수 없는 최고의 권력을 가지고 이 지상에 오신 분이지만 예수님은 그 권력을 남을 섬기시며 사랑하는데 사용하셨습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삶에 대하여 나폴레옹은 “나는 칼로 세상을 다 정복 못했지만, 예수는 사랑으로 세상을 정복했다”고 갈파했습니다. 섬김을 통해 예수님은 이 세상을 정복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사랑이 우리를 정복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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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4월6일 목회자 칼럼
  • 2008-0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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